역법(曆法) 역사

360력법 2008. 11. 25. 21:27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때에 대내마(大奈麻) 덕복(德福)이 당 나라에 들어가서 역법을 배워 와서, 처음으로 그 법을 써서 역서를 만들었다. 《문헌비고》
○ 고려(高麗) 때에는 별로 역서를 두지 않고 당 나라 《선명력(宣明曆)》을 그대로 본받아 사용하였는데, 장경(長慶) 임인년으로부터 그 후 태조(太祖)가 개국할 때까지 자못 1백 년이 지나자 그 역서가 이미 틀려졌다. 그 전에 틀려진 것은 당 나라에서는 이미 역서를 고쳐, 이로부터 역서를 모두 22차례 고쳤다.
그러나 고려에서는 그냥 사용하다가, 충선왕 때에 이르러 원 나라 《수시력(授時曆)》으로 고쳐 사용하였으나 개방(開方)의 수학(數學) 방법은 전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교식 일절(交食一節)은 오히려 선명력의 옛 방법을 그대로 사용했으니, 휴식 가시(虧食加時)는 천문(天文)에 합하지 아니하였다. 일관(日官)이 제멋대로 앞뒤를 억지로 맞추었으나 맞지 않는 것이 있었다. 고려 말까지 능히 고치지 못하였다. 정인지의 《고려사》
○ 세종 계□에 예문 제학(藝文提學) 정인지 등에 명하여 《칠정산 내외편(七政算內外編)》을 지었다. 처음에 고려 최성지(崔誠之)가 충선왕을 따라 원 나라에 들어가서 《수시력법(授時曆法)》을 얻어 돌아와서 추보(推步)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일월 교식(日月交食)하는 것과 오성(五星)이 행하는 도수는 오히려 곽수경(郭守敬)의 산술(算術)을 알지 못하였다. 우리나라가 개국하여서도 역법은 《수시력》을 그대로 썼다.《수시력》에 일월 교식과 오성의 입성(立成)이 빠졌으므로 임금이 정인지ㆍ정초(鄭招)ㆍ정흠지(鄭欽之) 등에게 명하여 추보(推步)하도록 하니, 명 나라 《대통통궤(大統通軌)》를 취하여 조금 첨삭해서 합하여 《내편(內篇)》을 만들고, 또 《회회역법(回回曆法)》을 얻어 이순지(李純之)ㆍ김담(金淡) 등에게 명하여 상고하고 바로잡게 하여 《외편(外篇)》을 만들었다.
○ 인조(仁祖) 갑신년에 관상감 제조(觀象監提調) 김육(金堉)이 상소하기를, “황제(黃帝) 때 이래로 옛 역법 육가(六家)의 뒤에 한 나라 무제(武帝) 때에 이르러 낙하굉(洛下閎)이 《태초력(太初曆)》을 만들었는데, 동한 말까지에 무릇 세 번 역서를 고치고, 위 나라로부터 수 나라에 이르는 동안에 13번 고치고, 당 나라 역서는 8번 고치며, 오대(五代)의 여러 나라에는 팔가(八家)의 역서가 있었고, 남송과 북송 때에는 역서를 11번 고쳤습니다.이렇게 다만 역서가 오래되어 차이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보는 것이 각각 정밀하기도 하고 거칠기도 하여 역서를 이와 같이 자주 고쳤습니다. 원 나라 초에 이르러 곽수경ㆍ허형(許衡) 등이 역법에 밝아서 입차(立差)를 매우 정밀하게 하여 영(盈)하고 축(縮)하며 더디고 빠르며 더하고 감하는 차이가 있었습니다.지원(至元) 18년 신사년을 역원(曆元)으로 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무릇 3백 65년이 되도록 일식ㆍ월식이 조금도 틀림이 없으니, 후세에서 교묘한 역서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천문(天文)의 운행이 쉬지 않으므로 조그만 차이가 날로 쌓여 많아져서 저녁과 새벽의 중성(中星)의 위차(位次)가 조금씩 틀려지고, 주천(周天) 도수가 이미 꽉 찼으니 마땅히 변할 것입니다.서양(西洋) 역서가 마침 이때에 나왔으니 이야말로 역서를 고칠 기회이나 다만 한흥일(韓興一)이 가져 온 책에 이론만 있고 입성(立成)이 없습니다. 대개 이 글을 지을 만한 사람이라야 능히 이 글을 알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비록 10년을 연구하여도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중국에서 병자ㆍ정축년 사이로부터 이미 역서법을 고쳤으니, 곧 내년의 신력(新曆)에는 반드시 우리나라 역서와는 틀린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신력 중에 만약 묘하게 합치되는 곳이 있거든 마땅히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도모하소서. 이번 사신 중에 일관 한두 사람을 동행시켜 흠천감(欽天監)에 탐문하여 역법을 추고하고, 의심나고 어려운 점을 알아 오면 추측하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문헌비고》
○ 효종(孝宗) 계사년에 처음으로 시헌력법(時憲曆法)을 행하였다.
○ 만력(萬曆) 때에 서양 사람 리마두(利瑪竇)가 중국에 들어왔는데, 천문력법(天文曆法)에 있어서 산법(算法)과 혼천의(渾天儀)를 운용하는 것이 옛날보다 매우 뛰어났다. 숭정(崇禎) 때에 예부 상서(禮部尙書) 서광계(徐光啓)와 우참정(右參政) 이천경(李天經)이 서양의 방법에 의거하여 《일월오성력지(日月五星曆指)》 및 《혼천의설(渾天儀說)》을 바치었으니, 이것이 《시헌력(時憲曆)》의 기본이 되었다.
○ 서양 사람 탕약망(湯若望)이 시헌력을 만들었다. 숭정 초년에 비로소 그 법을 사용하여 중국에서 시행하였으며, 청 나라에서도 그대로 계승하여 썼는데 그 법이 매우 정묘하였다. 김육이 관상감 제조로 있을 때에 그 법을 배워 익히기를 아뢰어 청하였다. 병술년에 사신이 되어 연경에 들어갈 때에 역관(曆官) 두 사람을 거느리고 가서 탕약망에게 배우려 하였다.그러나 경비가 삼엄하여 출입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책만 사가지고 돌아왔다. 김상범(金尙範) 등을 시켜 힘을 다해서 정밀히 연구하여 대략 그 개요를 알았다. 신묘년 겨울에 또 김상범을 보내어 많은 뇌물을 주고 흠천감에서 배워 와서 계사년으로부터 처음으로 그 법을 사용하여 역서를 행하였다. 그러나 오성산법(五星算法)은 아직 알아 오지 못하였기 때문에, 을미년에 또 김상범을 보냈으나 불행하게도 도중에서 죽었으므로 그 법을 마침내 다 전하지 못하였다. 《잠곡집(潛谷集)》
○ 숙종(肅宗) 무자년에 관상감 추산관(推算官) 허원(許遠)이 연경에 들어가서 시헌법(時憲法) 칠정표(七政表)를 흠천감에서 사가지고 돌아와서 그대로 추보하여 비로소 시헌력 오성법을 사용하였다.
○ 영종(英宗) 원년에 ‘신수시헌칠정법(新修時憲七政法)’으로 고쳐 사용하였다.
○ 서광계가 지은 《숭정력지(崇禎曆指)》에 숭정 원년 무진 천정동지(天正冬至)를 역원(曆元)으로 삼았더니, 우리나라 숙종조에 이르러 쌓인 위차(位差)가 점점 많아졌다. 매각성(梅瑴成)이 《숭정력지》를 미루어 넓혀 숭정 후 57년 갑자년 천정 동지를 역원으로 삼으니 곧 우리나라 숙종 10년 갑자이다. 칠정(七政)도 모두 여기에서부터 계산을 시작하였다.영종 을사년부터 처음으로 그 법에 의하여 일월과 오성의 교식(交食)을 추보하였다. 요즈음 서양사람 갈서니(噶西尼)가 또 말하기를, “태양과 지구가 반경(半徑)의 차이가 있다.” 하고, 각성(瑴成)은 3분이라고 정하였다. 그러나 지금 추측으로는 겨우 10초(秒)의 청기(淸氣)ㆍ몽기(蒙氣)의 차이가 있다. 각성은 지평상(地平上)이 34분이 되고, 높이가 45도이니 다만 5초가 있다고 정하였다.그러나 지금 추측에는 지평상이 겨우 32분이며, 높이가 45도요, 오히려 59초가 있다. 일월ㆍ오성의 천(天)에 관한 것을 각성이 ‘평원(平圓)’이라고 정하였으나, 지금 추측에는 타원이 되어 두 끝의 직경이 길고 두 허리의 직경이 짧다고 하였다. 이 세 가지의 경도ㆍ위도가 모두 조금씩 차이가 있으므로 드디어 숭정 후 96년 계묘를 역원으로 삼아서 일전(日躔)ㆍ월리(月離)의 교식을 고쳤다. 영종 갑자년부터 전리 교식(躔離交食)은 갈서니의 법을 따라 하고, 오성은 매각성의 법을 썼다. 《문헌비고》
○ 《금헌휘언(今獻彙言)》에, “동지 후의 나머지 날수로 명년 윤달을 정한다.” 하였는데, 가령 하루가 남으면 내년 1월에 윤달이 있고 이틀이 남으면 2월에 윤달이 있으며, 만약 나머지가 13일이 되면 명년에는 윤달이 없다 한다. 융경(隆慶) 5년 신미 선조 4년 에 동지 후의 나머지 날수가 4일인데 6년 임신에 일관이 2월을 윤달로 하였더니, 학관(學官) 어숙권(魚叔權)이 일찍이 《휘언》을 보았으므로 윤달을 잘못 만들었다고 고집을 세워서 영관상감사(領觀象監事)를 시켜, “다시 추산(推算)하라.” 하였다.그러나 일관이 오히려 자기 소견대로 고집하여 잘못되지 않았다고 힘써 변명하였는데, 그 뒤에 《대통력(大統曆)》을 보니 과연 그해 윤달이 2월에 있었으므로 일관이 죄책을 면하였다. 일관 남응년(南應年)이 말하기를, “《작력식언(作曆式言)》에 동지 후의 나머지 날수로 윤달을 정하면 이 법이 혹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었으므로 그달 안에 중기(中氣)가 없는 달을 윤달로 하는 것이 바로 역수(曆數)에 합당하다.”고 말하였으니,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월정만록(月汀漫錄)》
○ 현종(顯宗) 기유년 강희(康熙) 8년 에 예부(禮部)에서 흠천감에 통첩하기를, “이미 반포한 역일(曆日)을 다시 계산해 보니 윤달이 8년 12월에 들 것이 아니라 9년 정월에 들 것이다. 법에 의하여 본월(本月)의 일월ㆍ오성을 추산하라.” 하였다.
○ 보(補): 고(故) 정승 최석정(崔錫鼎)이 성력(星曆)을 알았으므로 일찍이 관상감 교수(敎授)를 겸한 일이 있었다. 《일득록(日得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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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건강] 김형진 원장의 자연치료법
 

의사 치료는 자연치유력 작동 도와주는 보조 역
노래와 춤 좋아하는 고혈압 환자엔 노래방 처방
 
 
강남자연내과 원장은 치료에서 자연스러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병원 이름에 자연이란 말을 쓴 것도 그런 자신의 철학을 담은 것입니다. 김 원장은 우리 몸이 자연스런 상태에서 벗어나면 병이 생긴다고 합니다. 
 
"흔하지만 만병의 원인으로 조심해야 하는" 감기가 그렇습니다. 그는 감기의 진짜 원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과로 등으로 인해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하는 부자연스런 몸 상태"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제 아내라면 권하지 않겠습니다”
 
Untitled-3 copy.jpg그래서 감기에 대한 그의 처방은 간단합니다. 물을 자주 마시고, 각탕(무릎 아래 부분만 물에 담그는 탕욕)으로 몸에 땀을 내고, 전해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고, 가장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푹 쉬라는 것이지요.
 
약은 증상을 줄이는 것이지 감기를 낫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의사들이 약을 처방하는 것은 아파도 일을 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증상완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2일 혈압이 높아져 그의 병원을 찾아온 환자에게도 김 원장은 약 처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고혈압 전단계인 경계혈압과 두통 증세를 보인 그 환자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그는 "혈압이 올라갈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50대 여성인 그 환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집안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노래와 춤을 좋아한다고 해서 노래방에라도 가라고 했습니다. 그렇게만 하더라도 혈압이 떨어질 것 같았어요. 정부가 나서서 그런 환자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합니다."
 
김 원장은 고혈압 환자에게 무조건 약을 권하지 않습니다. 그는 증세가 심하지 않은 환자가 고혈압약을 먹을지 말지에 대해 물으면 "제 아내라면 권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원인을 찾아 조절하면 된다고 환자를 안심시킵니다. 의사가 환자를 겁주거나 절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의사로서 김 원장의 철학입니다.
 
“생활비 벌기 위해 보험회사 다니는 아내 볼 때마다 미안”
 
김 원장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의사는 모든 사람의 몸 안에 있는 자연치유력이라고 말합니다. 의료 기관에서 하는 치료는 몸 안의 자연치유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도와주는 보조 역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증상을 없애는 치료는 제대로 된 치료가 아니며 효과도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증상은 몸이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두통이나 감기를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아! 몸이 낫는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어요. 하지만, 현대인들은 그런 느낌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약으로 증상을 줄여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는 약 처방보다 환자들이 몸 안의 자연치유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올바른 식습관을 가르치고, 환자를 대상으로 요가, 춤세라피 등 건강에 도움이 되는 강좌를 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 원장의 그 철학은 현실에서 구현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약이나 주사를 쓰지 않으면 환자들의 발길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또 처방 없이 진찰료만 청구하면 관계 당국에서 치료도 않고 보험료를 청구하는 것으로 의심을 한다고 합니다. 한때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하네요. 무엇보다 수입이 적어 병원 운영이 어렵습니다.
 
"일본에는 마음을 고친다는 뜻의 심료내과가 있어 의사와의 인터뷰도 보험청구 대상이 됩니다. 그렇게 바뀌어야 의사들이 지금처럼 약을 많이 쓰지 않게 될 겁니다."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보험회사에 다니는 아내를 볼 때마다 미안하다"면서도 "강남의 젊은 직장인들이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보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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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과학이 아니라 사회과학
 
약과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도 있지만 김 원장은 식이요법이나 운동요법 등으로 고칠 수 있는 병도 적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감기 환자가 쉴 수 없고, 스트레스를 풀 곳도 마땅치 않은 삭막한 곳입니다. 질병을 막으려면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한다는 게 김 원장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그는 의학은 과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김 원장의 진료실 책상 위에는 자신의 좌우명이 적힌 쪽지가 놓여 있습니다. 아름다운 몸짓, 말짓, 마음짓, 영혼짓. 허리를 편 바른 자세로 늘 웃고 지내며, 참말과 좋은 말만을 하고, 늘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며, 신이 자신과 늘 함께 계시니 편안한 마음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현대인에게 권하는 건강비결이기도 합니다.
 
김형진 원장은 건강하게 살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로 소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음식물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으면 독성물질로 바뀌어 몸 안에 쌓이고 질병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늘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는 그는 정성이 부족하고 온갖 첨가물이 들어간 외식을 줄이라고 권합니다. 그가 권하는 식사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원장의 식사법>
 
●과식은 금물
과식은 전 소화기관에 스트레스를 줘 적절한 소화를 방해한다. 위장의 1/2은 음식으로, 1/4은 물로, 1/4은 공기로 채우는 게 이상적이다.
 
●채식 위주로 단순하게 먹는다
 
●천천히 오래 잘 씹어 먹는다
쌀, 빵, 국수 같은 전분은 입에서 소화가 시작되므로 30~40번 씹어서 삼키라.
 
●허리를 펴고 식사를 하라
 
●간식을 하지 말라
음식이 위를 통과하려면 4시간 가량 걸린다. 그 뒤에야 다음 식사에 필요한 소화액이 고인다. 여러 번 먹으면 소화액이 위에 고일 기회가 없다. 하루에 4번 이상 먹으면 안 된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먹지 마라
 
●물을 자주 많이 마셔라
물은 독소나 대사찌꺼기를 제거하는 최고의 자연 정화제다.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음식은 삼가라
뜨거운 음식은 몸을 과열시켜 소화 효소의 작용을 방해하고 찬 음식은 위장관을 수축시켜 소화를 어렵게 한다.
 권복기 한겨레 공동체전문기자 bokkie@hani.co.kr
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2&sid2=59b&cid=168377&iid=60194&oid=028&aid=0001969187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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